침묵하는 세이렌의 이야기를 통해 삶의 불가해성을 비유한다. 우리 삶의 근본적인 속성인 불가해성은 넘어설 수 없는 한계가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기점을 설정하고 의미의 갱신을 가능하게 한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바다에 빠져 죽을뻔한 적이 있다. 달도 뜨지 않아 마치 눈을 감고 서있는 듯한 밤이었다. 어찌나 어두운지 저 너머의 바다는 멀다는 느낌조차 없이 그저 검은 허공으로 내 앞에 뻥 뚫려있었다.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소리. 나는 홀린 듯 바다에 뛰어들었다. 어찌하다 그렇게 됐는지 자세한 기억은 전혀 나지 않는다. 남아있는 것은 도저히 거스를 수 없었던 그 소리와 이야기에 대한 흐릿한 느낌 뿐이다. 어떤 소리인지, 어떤 이야기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강렬한 매혹과 갑작스럽게 타올랐던 내 안의 열망에 대한 이미지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나는 무언가에 홀려서 바다에 뛰어들었지만, 왜 그랬는지는 모르니까.
그때 이후로도 가끔씩 꿈에 나온다. 꿈속에선 그때 봤던 무언가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지독할 정도로 흐려지고 만다. 그런데 그 흐릿하게 어그러지는 이미지와 달리, 어떤 강렬한 느낌은 분명하게 남아 오래도록 이어진다. 그리고 나에게 그 느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와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어떤 답답함, 풀지 못한 채 남겨진 미스터리에 가깝다.
나는 사이렌 소리가 좋다. 사이렌 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찢고 들어와 지금 나의 현실보다 더 중요하고 위급한 일이 있다는 암시를 준다. 마치 선지자의 눈빛에 그득한 불안처럼 말이다. 사이렌 소리에서 우리는 보통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단순하게 그 소리가 어떤 위험을 경고하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그 위험의 요인이 불분명한 데서 불안은 기인한다. 정확하게 내 머리 위로 폭격이 떨어질 것을 예고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만을 말하기 때문에 오히려 강렬한 불안을 야기하는 것이다. 사이렌 소리는 불확실함 그 자체이다. 확실한 위험이 아니라 불확실한 안전. 그것이 사이렌의 다른 이름이다. 결국 그 어떤 명확한 이야기도 해주지 않는다. 사이렌 소리는 미스터리이다.
세이렌은 죽음이 아니라 미스터리이다. 그것이 절대적이고 빈틈없는 죽음이었다면 세이렌의 존재 자체가 알려지지 않았겠지. 세이렌은 뱃사람들을 어떻게 죽음으로 이끌었을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알려진 바와 다르게 세이렌은 뱃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이끈 것이 아니다. 세이렌은 그저 자신의 행복으로 노래를 부르고, 순수한 마음으로 진리의 이야기를 읊조렸을 뿐이다. 그리고 세이렌의 타고난 목소리를 타고 그 노래와 이야기가 멀리 퍼져 나갔다. 망망한 대해 어딘가의 운 나쁜 뱃사람들이 멀리서, 하지만 분명하게 들리는 그 소리를 듣게 된다. 그들은 그렇게 세이렌에게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과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소리의 장소에 뱃사람들이 가까스로 다다른 그 순간 세이렌은 침묵한다. 사실 세이렌은 부끄러움이 많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노래는 순전히 자신만을 위한 것이었고, 그 혼잣말에 귀 기울이는 뱃사람은 그저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이제 이 순진하고 무고한 세이렌 앞에서 뱃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몇 가지 없다. 그 소리를 잡을 때까지 무리하게 항해를 이어가던가, 혹은 직접 바다로 뛰어들어 헤매는 일 밖에 없을 것이다. 뱃사람들은 그렇게 세이렌의 소리를 온전히 잡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한까지 그저 그 소리만을 쫓게 돼버린다. 세이렌과의 만남에서 정말로 생명을 잃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게 아니다. 설혹 세이렌과의 만남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있을지라도, 이미 혼을 빼앗겼으니 그것은 죽음과 다르지 않다. 그는 혼이 나간 채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이렌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늘어놓을 것이다. 결국 세이렌은 침묵이란 무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죽음을 부여할 수 있는 강력한 존재가 된 것이다. 마치 격렬한 사이렌 소리가 갑자기 그친 뒤 찾아오는, 그 알 수 없음의 더 큰 불안처럼 말이다.
그렇게 사이렌 소리이건, 세이렌의 침묵이건, 그의 죽음이건, 나의 삶이건, 그 모든 것이 미스터리로 남는다.